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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하는 사람 #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많은 것을 함의한다. 결정을 내리는 측면에서는 내 주변의, 함께 사회를 이루고 있는 동료들이 불편하고 싫을 만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우리는 강한 반감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가 속한 문화가 고맥락 사회라서 더 그럴 수 있겠지만 딱히 얼만큼 강하고 불편하다 느끼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비슷한 부류의 의사결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꾸준히 생각을 단련해야 한다. 동료들이 스스로 안전하고 평온하다고 느끼는 Comfort zone이 실은 미래에는 불안을 더 키우는 요소일 수 있고 우리는 끝없이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길을 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너무 극단적인 위험이 아닌 적당한 수준에서의 압박감은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겐 Good to have이지만 일을 잘하고 함께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은 Must have이다.
결정을 하는 사람에게 Must have가 되는 요소 중 하나는 어떤게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의사결정이냐는 것이다. 당장의 부족해 보이는 기능과 오류가 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의 제품을 출시하자고 해서 결국 욕 먹고 눈치 보고 문의에 대응하고 보상을 지불하는 극단적인 상황과 완벽하다 느낄 만큼 완성도 높은 기능과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했지만 아무도 쓰지 않고 시간만 날린 극단적인 상황 중 선택을 해야만 한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예측이 불가하지만 확실한건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늘 욕을 먹는 쪽이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문제가 생겨 보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더라도 나는 쓰이고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보상하면 되고, 더 잘 만들어서 더 잘 벌면 된다. 즉 돈은 다시 벌면 되고, 고객에겐 빠르게 개선된 제품을 제공하면 된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이런 의사결정을 용기 있다고 박수를 받으며 지지하는 조직을 찾아야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초년생 때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2~3개월은 버리고 시작해야 했고, 답답함에 만든 비밀리에 따로 운영하던 프로젝트들이 더 큰 반응을 가져왔다. 이 반응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더 큰 성공을 이끄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증이었고 조직의 반발에 퇴출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나의 성장은 조직의 성장 보다 빨랐고 배움의 갈증에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그 조직을 떠나야 했다. 나는 수직적인 곳에서 시키는 것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만을 느끼고 엉덩이를 들썩였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일하고 즐겁다고 느끼는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언젠가 고객의 요구로 인해 새로운 기능 개발에 착수했을 때의 일이다. 제품의 주요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능이었고 이 기능이 개발되면 많은 고객이 쓰지 않을까라는 세일즈팀의 가정을 제품으로 끌고와 검증하는 기능이었다. 나의 사견과는 별개로 나는 무조건 시장을 검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이면 된다고 외쳤다. MVP1가 별로인게 아니다. MVP를 정의하고 어느 정도 경험까지를 MVP라고 말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는 MLP2는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MVP를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개념처럼 생각하고 있다. '가치가 되는 기준에 최소한의 사랑스러움은 더하자' 이고, 이건 필요에 따라 있으면 좋은 기준으로 생각한다. 이런 기준이니 QA팀이 화들짝 놀라며 수십개의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의 결론은 하나였다.
"이정도로 괜찮아요? 회사에서 괜찮다고 해요?"
"회사가 괜찮아야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한가요?"
"아뇨, 이러면 안쓰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는 살짝 웃어보이며 불안해 하는 엔지니어를 두고 입을 열었다.
"이정도라서 안쓰면 더 완벽한 기능이어도 안 쓸 거예요. 우린 좋은 제품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런 기능이 고객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알아보는 단계니까요"
"그래도..."
나의 단호한 답변에 QA팀 전원이 당황하며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요. 저는 이래서 문제라고 CS인입이 많아진다면 기쁘게 욕 먹을 수 있고 그때는 제가 틀렸었다고 사과하고 업데이트 할게요! 저는 시간을 아끼고 싶어요."
"네, DRI3가 그렇게 정하셨다면 그게 맞죠."
그렇게 이 기능을 사용하는 고객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나의 말과 의사결정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나는 우리가 번 시간이 수개월임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