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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성장을 추구하는 삶 #1
내가 속한 업계가 유독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별과 만남이 잦다. 회사에 남아 있다 보면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만 같은 동료들과의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어쩐지 나는 정체된 것은 아닐까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는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과 회사를 다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안정적인 것보다 도전적인 것을 택하며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는 것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 고민이 무색할 만큼 도전과 성장에 대한 욕심이 많으니, 정작 일을 시작하면 돌변해서 치열하게 일을 하고 있다.
자의란 하나도 없이 떠난 유학 생활에서 배운 건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이유였고, 그렇게 돌아와 독기만 가득해진 나는 군대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붙들고 공부를 하고, 뭐라도 하나 더 경험해 보겠다고 다른 일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대학교 4학년 끝물에 창업도 해 보고 이것저것 경험해 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지인들과 함께 천만 원씩 모아서 창업을 했는데, 그때 옆에서 보면서 IT에 대한 흠모를 하게 됐다. 게다가 그 위층에는 지금의 토스가 만들어지고 있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했다. 나는 함께 하자던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우리 가게 사정상 그럴 돈을 융통할 자신이 없었고, 친구들과 달리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공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까지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보았다. PT 면접에서 공공기관과 대기업 면접관들은 나의 발표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들의 아픈 손가락의 상처를 드러내는 대담함과 당돌함이 거슬렸을 것이다. 따르지 않을 것 같고, 당시에는 흔치 않은 캐릭터였기에 문전박대당했다. 어느 한 중소기업에서는 날 매력적으로 봤지만, 이번엔 내가 성에 차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 아버지가 대전으로 내려와 운영 중인 사업(사업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작은 통신사 대리점이었다)을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당시의 통신 시장은 가히 황금기라고 말할 만큼 부흥기였다. 동네 매장에 방문해서 유심히 지켜봤다. 고객 서비스(CS)와 세일즈가 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숨 쉴 틈 없이 바빴다.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대전으로 내려갔다. 매장 뒷켠에 마련된 개통실이라고 불리는 사무실은 아버지의 대기업에서의 경력과 노련함이 모두 묻어나 있었다. ARPU1부터 R/S2까지 산정되고, 새로운 마케팅 채널을 찾는 분주함, 영업 담당자들은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을 오가며 협력 업체들에 전달할 전단지를 겨드랑이에 끼워 넣고 있었다. 내가 찾던 활기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돌아가는 구조도 이해됐고, 대부분의 CS와 판매도 할 수 있게 됐다. 정산은 아버지가 주로 하셨지만 필요에 따라 내가 하기도 했고, 교환·반품 등의 제조사와의 협업도 직접 하나씩 해 나갔다. 조금씩 시간이 남기 시작했고, 바쁘게 배우던 일들이 숙달되자 다른 기회를 모색했다. 온라인 마케팅으로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투자금 없이 해 볼 만한 일로 보였다. 당시에는 스팟성으로 보조금 규모가 바뀌기도 했는데, 00시에 바뀐 보조금이 공시되고 수량 제한이 있어 누가 먼저 많이 빨리 파느냐의 싸움이 되기도 했다. 보통 대당 5만 원을 우리 이익으로 잡으면 2~3만 원 정도를 온라인 운영 대행에 맡기게 되는데, 내가 직접 하면 이 비용을 아끼면서 우리 쿼터를 초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계산해 보니까 오늘 하루 제가 50대만 추가로 주문받아도 목표 120% 달성하니까 대당 1만 원까지 추가로 나와요. 그럼 3개월 유지 보상에 요금제까지 포함하면 6만 원씩 이익으로 잡히니까, 우리 리베이트 제로로 계산해도 하루 밤에 300만 원, 전체 판매량에 보너스 붙이면 훨씬 규모가 커질 거예요. 제조사 리베이트까지 있으니까요.”
“그래? 한번 해 봐. 그럼.”
영업하고 정산 담당을 해 주던 부장님한테 바로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부장님, 온라인 스팟 이벤트 우리도 해 보면 어때요?”
“그거 비싸~”
“제가 만들고 제가 밤새면 될 것 같아요.”
“네가? 그럼 내가 뭘 도와줄까?”
“10시 이후에 내일 단가 나오면 우리 마진 계산해서 어떤 기종 얼마로 할지만 확정지어 주세요.”
“오늘 안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럼 10시에 퇴근하는 거죠.”
그렇게 밤 10시까지 대기하며 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어떻게 판매하고 내가 공략할 지점을 찾았다. 부장님과는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다른 곳은 어떻게 내부 프로세스를 가져가는지 찾아봤다. 당시에 사용하던 쇼노트 주문에 연계해야 했었고, 어떻게 판매점 배정을 하는지까지 알아내고 준비를 해 나갔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뽐뿌라는 사이트가 가장 고객이 붐볐고, 가장 인기가 많았다. 나는 내가 세운 전략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가 나오자마자 가장 빨리 올릴 수 있도록 11시 59분에 올릴 하나와 1시간 텀을 두고 올릴 새로운 글을 준비했다. 당시 뽐뿌는 업체 인증을 받아도 유료 결제하지 않으면 하루 게시글 2개로 제한이 있었다. 가장 빠른 글과 가장 늦은 글을 차지하려고 했다. 이 전략은 단순했다. 가장 빨리 올린 글은 얼리어답터 고객들에게 빨리 노출되어 조회수를 가져가기 위함이었고, 가장 늦게 올린 글은 뒤늦게 소문을 듣고 교체 주기가 도래했는데 싸게 바꾸고 싶어 했던 고객에게 오래 노출되고 싶어서였다.
얼리어답터 고객은 3개월 뒤 이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았지만, 뒤늦게 들어온 고객들은 3개월 이상 체류하거나 부모님 선물로 사는 경우가 많아 잔존율이 높은 편이었다. 우리가 전국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미리 세팅해 둔 HTML에 이미지만 바꿔 끼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글을 등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프라인에서 내가 경험했던 고객들이 감동받고 구매를 결정하던 마지막 단추를 맞출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