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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성장을 추구하는 삶 #2
모든 준비가 끝났고 업로드도 완료했으니, 자연스럽게 재고가 모두 소진되면 종료될 것이다. 다른 업체들의 글도 많이 올라왔고, 담당 직원까지 있다던 지역 내 가장 큰 대리점의 글도 올라왔다. 조회수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얼리어답터들은 많이 해 본 만큼 궁금할 것도 없다. 상품 상세 페이지 하나만으로도 구매 결정이 가능할 정도로 관련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었다. 댓글이 하나 달렸다. 이제 내가 생각했던 마지막 전략이 실행될 차례였다. 다른 글들의 댓글 대부분은 후발주자들이었다. 정보가 부족하고 구매해 본 적이 없으며, 부모님이나 자녀에게 사 주기 위해 가성비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잔존 기간이 더 길고 오래 사용할 사람들이라는 가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구매 결정은 마음은 조급하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질문거리가 많은 상태일 거라고 판단했다. 게시판과 상품 페이지를 오가면 어떤 상품이었는지 잊힐 것이고, 지금 구매하지 않으면 기회가 사라진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모든 댓글에 실시간으로 답글을 남기자. 오프라인에서 상담했고, 나는 가격 정책과 부가 서비스 구성까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온라인만 주로 하는 대행업체나 담당자보다 이 부분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댓글은 또 하나의 강점이 있다. 제목 바로 뒤에 붙는 댓글 수는 주목을 끌기 좋았고, 돈을 내고 프리미엄을 붙여 광고하며 형형색색 꾸미는 것만큼의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댓글 수는 조회 수와 달리 내가 남기고 댓글을 확인하게 하는 것까지 있어, 상품 상세 페이지에 여러 번 방문하게 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즉, 댓글도 조회 수도 +1씩 보장되는 셈이었다. 댓글을 바로 남기기 시작하자 내가 올린 상품은 ‘성지’가 되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에 볼 수 없었던 친절한 답변과 정확한 정보는 신뢰 형성으로 이어졌고, 생각보다 주문량이 떨어지던 다른 업체들은 가격을 낮췄지만 나는 가격을 낮추지 않고도 엄청난 양의 주문을 받아냈다. 대부분의 양을 소화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이미 도파민이 터진 나는 집에 가서 잘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이 주문을 소화하려면 미리 준비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통에 필요한 서류들을 출력했고, 택배 박스를 준비해 두었다. 다행히 예전에 몇 개라도 들어오면 보내야 하는데 상자 주문은 대량으로 살 수밖에 없어 사 두었던 게 다행이었다. 송장은 수기로 작성했는데, 나중에 대한통운에서 송장을 받아 프린트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실적에 아침부터 부장님 전화는 본사 전화로 불이 났고, 놀라서 출근한 부장님은 밤을 새워 눈까지 붉어진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하셨다.
“야.. 이게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머쓱하게 웃으면서 나는 계속 내가 할 일을 했다.
“너무 많아서 본사에서 걱정하던데?”
“배송을 못 할까 봐 걱정되긴 한데, 정책만 잡아줄 수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주문량이 너무 많아서 택배 발송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수백 개의 물량을 경험도 없는 우리가 갑자기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예고된 것도 아니니, 다들 10시에 매장 열 생각에 9시쯤 나오고 있을 것이다. 정책이 바뀌면 그 시점 이후로 개통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취소가 필요했다. 직원 5~6명으로 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 어쩌나 걱정이 밀려들자마자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일단 배송이 밀려도 개통은 다 해야 돼요. 충분한 이익을 남겼으니, 강성 민원이 들어오면 퀵으로 늦게라도 보내면 되니까요.”
“그래.. 근데 너 진짜 무슨 깡이냐?”
“번호 이동이니까 대기 시간 포함해서 하나에 30분은 너무 길어요. 병렬로 5개에서 10개 정도는 동시에 개통해야 돼요. 부장님이 말 좀 해 주세요.”
뭐에 홀린 사람처럼 나는 계속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물으며 얼마나 했는지 여쭤봤다. 그리고 뭐가 이상하다 느끼셨는지, 잠은 잤냐고 여쭤보셨다.
“전 괜찮으니 이따 나와서 택배 싸는 것 좀 거들어 주세요.”
정확한 수량은 기억나지 않는데, 300개 주문이 들어왔으면 결국 50개 정도는 개통을 하지 못했다. 이미 지역 마케팅팀에 이야기해 뒀고, 일정량은 본인들 예산으로 소화해 주겠다고 약속을 받아 놨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격차를 벌리며 가입자를 끌고 온 적이 없으니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물론 이 이면에는 아버지가 속했던 팀인 것도 있었을 것이고,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한몫했을 것이다. 50개는 전화를 돌리며 개통이 밀리고 배송이 늦어졌다고 사과하고, 취소를 원하시면 취소해 드리겠다고 했다. 1~2개 정도는 취소됐는데 나머지는 방어가 잘 됐다. 이들은 늦게 주문했던 분들이라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느꼈고, 동시에 그나마 주문이 가능했던 이유도 댓글 너머에서 받은 친절함 때문이니 하루 정도의 불편함은 괜찮다고 했다. 4시 40분 택배가 모두 떠나고, 6시까지 개통을 돕고 7시 30분쯤 업무가 마무리되자 긴장도 함께 풀렸다. 매장도 개통실도 상담하며 틈틈이 온라인 주문분을 개통했고, 함께 전화까지 돌려 가며 위기이자 기회를 넘겼다.
“승빈아, 이제 넌 먼저 가서 좀 자라.”
그날 이후로 우리는 3~4번 더 이런 일을 해냈고, 지역 내에서도 한 대리점이 독점하지 않도록 재고와 주문량을 분배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3개월이 지나자 급속도로 빠지는 고객들, 내 예상보다 높지 않았던 잔존 기간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이들은 한번 배우고 맛을 보자 점점 더 빨라졌고, 후발 주자는 얼리어답터가 되어 하나의 명의로 다섯 개까지 개통 가능한 점을 이용하여 6개월은 갈 것이라던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어쨌든 이 길이 진정한 성장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에 성공했고,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