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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들다 #1
업무적으로 만드는 것들은 비즈니스와 고객에 집중해서 만든다. 대부분 내가 직접 사용하는 일이 적은 제품, 흔히 말하는 개밥먹기를 잘 안하게 되는 제품들을 맡아왔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을 품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서 직접 만들어 왔다. 아이들 일기도 쓰고 성장 과정을 담으려고 우리아이라는 앱부터 최근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하고 있다. 쓰면서도 나 혼자 쓰겠다는 오직 하나의 마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스토어에 출시했고,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테스트플라이트 같이 나만 사용 가능하게 업로드 해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기간 제한이 있어 주기적으로 빌드와 업로드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었다.
아이 성장 일기를 눌러 담던 제품은 운영 비용을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500명에서 1500명까지 오가는 사용자들의 유입 전에 운영 편의성이랍시고 인프라를 너무 크게 설계했던게 문제였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 0원 매각을 했고 팀이 붙어서 여러 실험들을 했다. 내 눈 앞에서 제품이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비즈니스 실험적인 제품으로 나아가는 걸 목격했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눈에 담지 않았던 취미는 이직한 회사에서 사진 동아리 웹페이지를 만드는걸로 다시 눈을 떴다. vercel로 배포하고 운영하던 페이지는 매일 git repo에 선정된 사진 한장만 올리고 json만 수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득 생각나서 들어가보니 아직도 잘 운영되고 있어 뿌듯했다.
그리고 아이들 증권 계좌를 보기 위해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해야 했던 번거로움 때문에 사용하던 도미노 앱이 종료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비스는 급격하게 불안정한 모습이었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자 그냥 마이데이터 이런 것 필요없으니 수동 입력해서라도 관리할 수 있는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기투자를 하는 내게 딱 맡는 제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타가 아니니 주가 반영이 빠릿빠릿하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API에 대한 제약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이게 비즈니스나 제품 지표를 봐야한다면 최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돈을 벌거나 락인을 강하게 시켜야 하는 이유가 빠지니 더 여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재미요소들을 몇가지 넣었더니 이제 더 업데이트할 것도 많이 없었다. 리뷰에 올라온 배당금 관리가 유일하게 내가 필요했던 기능이 아닌 업데이트였고 액면분할같은 이벤트가 최근에 반영된 전부이다. 정작 업데이트는 잘 안하지만 매번 들어가서 우리 가족 자산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있으니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줄었다.
주주부모라고 이름을 붙인 이 앱을 가장 많이 확인하는 건 운동 전후였다. 주 2회 웨이트, 주 2회 러닝을 하는 나는 서로 다른 앱을 사용하고 있었고 각각의 불편함이 있음에도 적응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웨이트는 어차피 루틴이 정해져있어서 그냥 타이머만 맞추고 쉬는 시간 관리를 했었는데, 문제는 애플 피트니스와의 연동성이 떨어졌고 세트 관리가 수동이라서 운동하면서도 변하는 내 컨디션에 따라 세트를 다시 설정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한번 두번씩 애플워치에서 탭을 해야 할 때마다 불편함은 점점 커졌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런데이, 나이키런클럽 등 다양한 앱들로 변화를 주며 익숙해지려고 했다. 런데이의 장점은 30분 달리기를 위한 초반 코칭이다. 에너지 넘치는 코치의 목소리와 여러 팁들은 처음 달리기를 하는 내가 어떻게 몸을 움직여서 멀리, 오래 달릴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이키런클럽은 기록 관리용이고 영문 위주라 그런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근데 이것도 내 루틴이 생기자 아쉬움이 있었다. 케이던스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 나오는 음악은 더이상 런데이에서 제공하지 않았고 달리다보면 km마다 나오는 안내 음성이 전부였다. 애플워치만 가지고는 거리나 시간을 목표로 달릴 수도 없었다. 자유 달리기만 하기에는 아쉬움이 컸고 음악도 들으면서 뛰려는 내게는 결국 휴대폰을 들고 음악 재생까지 해야했다. 그렇다고 워치를 셀루러 모델로 바꾸는 투자까지 하기에는 내 러닝은 정말 조깅 수준이었다. 그래서 주주부모처럼 하나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에 열심히 또 내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AI모델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쉽게 콘텐츠 생산까지 할 수 있었다. 그저 배워가는데에 오래 걸렸고 내 M1 맥미니가 얼마나 심각하게 성능이 안좋은지 알았을 뿐이다. 사용할 수록 이것도 저것도 수정할 것들이 생겼고 이제 또 내 운동 패턴에 딱 맞춰졌다. 다운로드가 있긴 하던데 사실 리뷰나 연락이 와서 이런 것도 쓰고 싶다하는 것 아니면 그냥 무시한다. 애초에 이렇게 만들어지는 제품들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웹툰을 보며 쉬다보니 회귀물이니 환생이니 내가 왜 이걸 보고 있나 싶었다. 그냥 내가 플레이 하고 싶은데 이 웹툰이나 웹 소설의 재미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게임은 이제 거부 반응이 있다. 큰 고민이나 생각 없이, 시간 투자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원했다. 그래서 텍스트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고 비슷한 게임을 발견하지 못해서 직접 만들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나만 하면 되니까.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들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게임 주제는 동료가 좋아하는 무협을 하기로 했고, 대신 그분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나는 토요일이 되자마자 codex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를 내가 원하는 톤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게임 스타일도 심플하게 하려고 했다. 전투씬은 무협답게 무공의 화려함을 이펙트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틀동안 만들고 출시 직전에 큰 고민이 생겼다. 그동안은 무료 앱이었는데 이건 무료로 하면 피드백이 들어올까봐 걱정됐다. 다른 이가 다운받을 일이 없으려면 유료앱으로 만들어 버리면 아무도 안쓸 거라며 동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문제는 내가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가격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apple connect에 앱 가격 설정하는 드롭다운 중에 아무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가격을 그냥 클릭해서 심사 제출했고, 그대로 통과되어 출시했다. 심사가 통과되니 거의 한 주가 지났고 금요일에 프로모션 코드를 동료들에게 주며 이제 해보라고 했다. 여기까지 가벼운 마음이었다. 나도 내 시간 흐름에 맞춰서 게임을 할 수 있으니 가볍고 좋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내게 이름을 써도 된다고 했던 동료가 퇴사한다는 말을 했다. 동료가 퇴사하면 PO는 바빠진다. 부검도 해야했고 대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다른 프로젝트들의 일정에 대한 고민을 하고 미팅하고 집에 오니 이미 밤 11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