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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갈증 #1
마치 가을 타는 병에 걸린 것처럼 가을이 오면 어딘지 모를 답답함과 시간이 가버렸다는 아쉬움이 깊게 남을 때가 있다. 생각은 점점 더 추상적인 상상이 되고, 그 상상은 현재의 나를 옥죄는 고통으로 남는다. 분명하고 명확한 문제가 아닌 기분의 잔상만 남은 그때가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 한다.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굉장히 여러가지 방법들 중에서 우리의 방법은 늘 보편적인 다른 사람이 찾은 답을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트업들은 이 길을 거부한다. 이미 걸어간 길은 이미 정해진 답의 한계 안에서 머물게 하며 이런 세상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변화 시킬 수 없다. 스타트업은 그래서 파괴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창의적이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한 모든 당연한 것들이 예전에는 혁신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길러지면 안좋은 점은 단 하나다. 개인적인 고민도 쉽게 고민을 끝내지 못한다. 고민의 연속이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작디 작은 영향일 뿐인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의 한계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들을 조금 더 내면 깊이 들어가 보면, 그냥 나의 커리어패스를 위해서, 더 많은 영역을 경험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고싶어서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고민들은 이 지점과 달랐다. 하나하나의 체크리스트를 통과한 나는 복합적이었다. 커리어도 더 많은 영역도 아니었다. 내 꿈에 빨리 닿고 싶은데 닿으려면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 이상을 해줘야 했다. 누가봐도 미친 것 같은 도전을 해줘야 한다. 미친 것 같다는 건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과 방정식으로 풀었을 때 기대되는 미래는 그 방식과 방정식의 최적화된 함수 정도이다. 우리는 없는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미 오래된 형식과 템포에 맞춰질 수 밖에 없었고 관성적인 생각에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것에 길들여지기 싫다는 반항심이 가장 컸다.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고 갑자기 양말을 팔겠다는 도전을 하는 것 이상의 도전을 경험해야 한다 생각했고,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수 많은 상점의 사장님들의 도전이 나와 동료들이 하는 도전 보다 위대해 보이고 대단하다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나의 지금에 답답함을 느꼈다. 더 강하고 격렬하고 공격적으로 도전했으면 했다. 근데 그걸 잘한다고 생각하고 모셔온 분들의 도전 과정을 가까이서 못 봐서 그런 것인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내 삶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텅 비워지는 과정이 아쉬웠고, 불태우고 며칠은 푹 쉬고 싶은 그런 강렬한 도전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아직도 답은 못 찾았다. 그냥 이 답답함의 답을 찾아 가는 동안 더 주변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고 압박감을 주는 방법 밖에 없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깨달음은 얻었다. 이런 답답함을 가지고 한달이 넘는 시간 내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누군가는 나의 답답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지 궁금해 하고 제3의 관점에서 내게 대화를 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 조직은 좋은 조직이다. 나는 일에 진심이라 개인적인 고민은 뒤로 하고 사는데도 일을 하며 오는 답답함과 벽을 느낀 인재를 늘 관찰하고 세심하게 케어하고 있고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싶어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