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bin'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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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타이틀 보다 J커브

데이터 정제와 가공이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 ML1의 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고 AI 시대의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팬데믹 시대에 많은 오프라인 사업들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배달업이 뜨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생계는 유지해야 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데이터 어노테이션 흔히 레이블링하는 플랫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거처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심했었다. 대전에는 나의 커리어가 더 확장되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더 늦으면 아무 곳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압박감도 있었다.

서울로 거처를 확정하고 돌아가려던 시점에 아동 육아를 도와주는 플랫폼팀에 합류가 확정됐다. 제법 큰 회사들의 합격을 뒤로 하고 합류하기로 결정한 만큼 내가 느끼던 갈증을 해소할 진짜 스타트업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선택했었다. 나의 꿈과 이 회사의 비전은 완전히 일치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불과 2주만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내 탓이다. 오히려 내가 던지는 질문보다 대표가 던지는 질문이 많았고 대표는 동경하는 문화를 내게서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해낼만큼 확신은 없는게 문제였다. 그렇게 한달이 조금 지나 더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빠르게 다시 시장으로 나왔고, 마침 데이터 레이블링 서비스를 운영하던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창업 초창기부터 나와 알고 지냈고, 서로 호흡도 맞춰봤고 스타일도 알기 때문에 크게 분쟁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AI로 커리어를 쌓아온 나의 과정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기대치도 있었다.

"승빈님 혹시 사업 개발쪽으로 합류해주실 수 있나요?"

스스로 프로덕트 가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게 전직 제안은 당황스러웠다. 나의 당황스러움을 눈치챈 그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제품을 만드는 것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은 아녜요. 다만 지금은 사업을 전개해주고 확장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빈틈의 역할부터 채워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고민이 되긴 했지만 애초에 나는 어떤 잡타이틀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전직장에서 필요에 따라 CTO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프로덕트오너였다가 PM이었다가 이사였다가 연구소장이었다가 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좋아요. 다만 사업 개발만 한다가 아니라 제가 필요한 곳에서 어떤 일이든 하고 싶어할 수도 있어요. 그건 괜찮으시겠어요?"

"네 좋아요"

그렇게 극적 타결된 우리는 회사가 위치한 양재 AI 허브에서 조우했다. 꽤 오래 격조했기에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본 거였다. 그렇게 회사에 대한 소개를 짤막하게 듣고 오피스 투어를 한 뒤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동창업자들과 나와 함께 일할 BDM2이 참여한 인터뷰는 순조롭게 정리됐다.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니 문자가 와있었다. 운전 중일 것 같아 도착하면 전화를 달라는 대표의 연락이었고 합격 소식과 함께 당장 내일부터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책 사업들에 지원하고 거대한 지원금을 받으며 대AI시대를 함께 맞이했다. 자원이 확보되자 사업 자체의 문제보다 제품의 성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견된 과제 대비 이걸 해결할 사용자가 너무 적다는 문제였다. 어노테이션 툴을 만드는 기간은 별개로 하더라도 결국 물리적으로 사람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B2C3 제품에 들어와서 일정 수수료를 받고 AI 학습 데이터를 만들 사람들이다. 방향을 바꿔서 생각을 전개했다.

'사람들이 모일 제품, 광고를 돌려야겠구나.'

풀스택으로 일할 수 있는 동료를 수소문하고 인터뷰를 보고 팀에 데리고 왔다. 여러 다양한 광고 랜딩 페이지를 제작하고 실제 제품에 연결시켜줄 역할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케터가 팀에 합류했다. 비즈니스 팀원들과 엔지니어까지 섞인 팀이 됐다. 직접 쿼리를 만들고 데이터를 조회하며 가장 전환율이 높은 그룹과 캠페인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예정된 사업들을 미리 fake 테스트4 하듯 돌리며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과제와 오래 걸릴 과제를 구분했다. 작업자들은 한번 작업하면 한달 이상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몰된다. 숙달되면 다른 걸 배우는 것 보다 지속하는게 돈의 효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사 보다 먼저 작업자들에게 닿아야 했다.

미리 프로젝트 내용을 알리고 사전 신청을 하도록 했다. 사전 신청은 회원가입이 조건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고 하겠다고 확정된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오픈할 수 있는 프로젝트부터 열기 시작했고, 일반 기업들 대상으로도 지금 우리가 가진 작업 도구를 이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수집했다. 그렇게 락인을 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쯤 100명도 채 안되던 우리 제품의 사용자는 2만명이 넘어갔다.

Footnotes

  1. Machine Learning, 기계학습

  2. Business Development Manager

  3. Business to Consumer,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4. 실제로 존재하는 서비스인 것처럼 속여서 시장 수요를 빠르게 알아보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