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bin'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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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사람의 모임

피터의 법칙1은 단순히 능력의 한계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에 달했을 때 인간은 가장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정하기 싫어서, 극복하기 위해서, 인정받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물론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몇 번의 운이 겹쳐 좋은 성과를 만들었던 적이 있고 회사에서는 임원이 되어 있었다. 20대의 내게는 부담과 책임감이 함께 작용하기 시작했고 성과의 텀이 길어지자 회사는 내게 그때의 성과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구성원들이 하는 말과 표정은 어떤 뜻을 담지 않아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스스로를 옥죄어 가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원하던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이 아무도 내 옆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무 동료도 남지 않으니 성과가 잘 나올 리가 없었다. 진짜 나의 한계였다.

변화를 위해 나도 조직도 새로운 확장이 더 필요했다.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려면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조직이 느끼는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고, 그 일을 단행해야 하는 대표는 있으면 좋은 정도의 good to have정도로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조직을 떠나야 했다. 떠나며 리딩 그룹에 다시 들어가서 조직을 이끌 때는 더 천천히 나를 증명하며 나의 속도에 맞춰 온전히 나의 리더십을 인정할 수 있는 조직에서 나를 원할 때 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온전히 지지해줄 수 있는 곳은 단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를 존중한다면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소진한 당시의 나는 5년이란 시간을 쏟아 부었고 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판단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당시의 나는 매몰 비용2이 아까워 프로젝트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풋내기였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더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조직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조직을 만나겠다는 목적 보다는 더 근원적인 일에 집중해서 회사를 선택해왔기 때문일 수 있다. 프로덕트 오너로 일을 해오며 단 한번도 그때만큼의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여전히 나는 그때처럼 열의를 불태우고 있으며 그때보다 더 성숙한 태도로 일을 하고 있다. 경험이 쌓였고 나름 야무지게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조직을 지나치며 한계를 마주하고 여유를 잃어가는 이들을 보게 된다.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을 말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행동으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안에서 증명된 사람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후광 효과가 있는 외부의 사람이 채용되기도 한다.

전자는 드물고 새로운 맛은 없지만 리스크는 낮다. 하지만 잘 랜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부담은 생긴다. 후자는 새로운 시선으로 변화를 주고 가치를 더해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높은 기준에 부합하는 증명을 스스로 해내야 하고 그 사람과 일하는 모든 조직을 잃을 수 있다. 후자의 회전이 많은 조직은 안정감이 없으며 후자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조직의 방향은 바뀐다. 조직은 결국 사람의 모임이다.

Footnotes

  1.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승진할수록 자신의 능력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경영 이론

  2. 이미 지출되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나 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