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bin'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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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에 워커홀릭이 된 사람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싶다는 욕심 보다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할 게 없다고 느끼는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대학을 졸업할 때 학사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4학년이 되자마자 만사 뒤로 다 제치고 논문부터 미친듯이 쓰고 지도 교수까지 혀를 내둘렀던 외국인 학생이었다. 군대에서는 훈련을 앞두고 그냥 따라만 오라던 작전 장교의 말을 듣지 않고 밤새가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공부했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할 만큼 성실한데,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이고 심심해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 할 것들이 다른 누군가는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으니 모두가 엄청난 천재들이었다. 생각해보면 IT 도메인에 처음 들어갔으니 당연했을텐데 그때는 어떻게든 회의에 참여하고 대화를 하고 나의 의견도 피력하고 싶었다. 40명 남짓한 회사에서 전략사업부라는 이름의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됐고 나는 R&D팀의 연구원이었다. 소속과 직함만 보면 굉장히 멋있지만 나의 일은 내가 만족할 만큼 멋지게 해내고 있지 못했다. 서비스 기획자이면서 PM이면서 연구원이 되어야 했던 20대의 나ㄴ는 함께 일하는 개발자(당시 과장님)의 한마디로 터닝 포인트가 생긴다.

"너가 기본이 없어서 그래"

기본이 뭔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그 발언이 독성 말투는 아니었다. 정말 기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질문한 더 높은 수준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걸 설명해도 이해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웃으며 돌려 말한거지만 내가 다른 동료들 눈에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게 깨우치게 해주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로 했다. 책도 펼쳐보지 않고 일단 닥치는대로 하고 보는 성격이었기에 Hello World를 띄울 틈도 없이 그냥 만들고 싶은 제품을 생각나는대로 만들어봤다. 가장 만들고 싶으려면 나와 가까운 가족이 쓰는 제품이어야 했기 때문에 iOS 앱을 만들기로 했고 Objective-c 로 하나하나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이것도 실패, 저것도 실패하며 결국 내가 만드는 앱들은 잘 되지 않았지만 왜 회원 로직이 들어가면 까다롭고 시스템의 복잡도가 크게 상승하는지는 확실히 이해했다.

공부를 하며 한계를 극복했더니 이제 한계를 느끼기 전에 새로운 걸 배우려고 했다. 한계에 대한 두려움은 결혼, 출산과 같은 개인 신변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고 책임감과 부담감 사이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남들은 한번 받을 석사를 종류를 바꿔가며 두개를 받았고 틈만 나면 SOTA 논문을 읽으며 누구보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스스로 주었다. 어느 날 나는 워커홀릭이었고 누군가는 내게 경외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안감은 끝나지 않는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이제 11살이 되고, 둘째는 8살이 되는데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적어도 10년 이상 벌어야 하고,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삶을 누리려면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경제적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모르겠다. 지금 업으로 삼고 있는 이 일이 그때까지 이어질지, 새로운 길을 찾을지.. 몰라서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최선을 다 하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길로 가더라도 지금의 경험과 배움들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습득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