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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위한 실행, 실행을 위한 확신 #2
AI 시대가 열리자 스타트업은 더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AI를 성장시키는 학습 데이터는 지금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장애물이었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이 부분에 대한 성장 동력을 가속화하고 싶어했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보면, 딥마인드가 한국에 알파고를 들고 와서 이세돌과의 대국을 하기 전 발표된 논문은 나의 흥미를 끌었다. 특수한 영역에서 더 많이 쓰이지만 알파고의 베이스 모델이 된 강화학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기술들이 비즈니스 필드에서 먼저 도입되고 창업의 기반이 되었던 과거와 달리 아카데믹한 영역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했다.
강화학습은 확실히 제약 조건이 있었다. 게임과 같은 결과가 수치로 전달되어 계속 시도하고 더 좋은 성과를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일상에서는 사람이 직접 잘했다 못했다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잘했다고 해도 더 잘했다가 되는 기준도 없기 때문에 강화 학습 보다는 딥러닝이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머신러닝 기술부터 화재 예방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퍼져나갔고 인류애 충만한 서비스들이 앞다투어 출시됐다.
당시 웹 에이전시 회사에서 R&D팀에 있던 나는 이 기술이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변화의 현상이라고 굳게 믿었다. 비슷한 시기의 블록체인 보다 더 실체가 있고 도움이 되는게 눈으로 보였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제안했던 회사의 기조와는 다른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뜬금없는 제품을 만들 수는 없었다. 기존의 캐시카우1와 연결되어야 비즈니스 임팩트가 더 강할 것이고 초기 영업 비용도 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선택은 완전히 잘못 됐지만 당시에는 95%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구성원들과 조직의 지지를 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이 선택이 잘못됐었다고 회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럴거면 확실하게 도전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출시한 제품은 추천 시스템의 콜드 스타트2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문자들의 콘텐츠 방문과 소비 패턴에 따라 다음의 콘텐츠를 추천하고 유인하는 방식을 택하고 첫 방문자의 유형과 세그먼트에 따라 추천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함과 동시에 Multi Armed Bandit3으로 가장 확률 높은 선호도에 맞추도록 여러 알고리즘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시스템 도입을 더 장려하기 위해 검색 엔진도 붙이기 시작했다. 3개월만에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몇몇 기관과 PoC를 진행했다. 비즈니스 조직의 도움을 받지 못해 내가 직접 찾아다니며 세일즈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팔리기 시작하고 단점들이 도출되면서 이 길의 문제점들이 발견됐고, 회사는 매몰비용이 아까워 이 서비스들을 접을 수 없으니 더 해내라고 했다.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는데, 왜 확신없는 실행을 했냐는 비난을 이겨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함께 개발하던 B2C 서비스들, 유망했던 것들까지도 해낼 동력을 잃어갔다. 당시에 이런 이유로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제품들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너무 크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시장에 동시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경쟁 서비스들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승승장구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명확한 확신을 가졌던 서비스들을 포기하고 매몰비용이 크고 하면 안된다는 확신만 있던 제품을 바라보고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조직 안에서 나는 빛을 잃어갔고, 내가 즐겁고 확실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확신은 명확해졌다. 확신을 위한 실행을 할 수 있는 조직, 배우고 성장하는 조직을 찾아 나는 회사를 내 발로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