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bin'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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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낼 수 있는 환경 #1

"우리 조직은 데이터를 너무 많이 보는게 문제예요." CPO가 떠난 조직에서 제품 총괄을 임시로 대행하던 CTO가 대표와 나를 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런 면도 있다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근데 잘 동의되지 않는데 누가 많이 보나요?"

그는 나의 질문에 손톱을 뜯으며 내가 아닌 대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승빈님이 제일 많이 보는데요."

당황스러웠다. 늘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해왔던 팀이었고, 데이터로 증명되지 않는 정성적인 평가는 경계했다. 두 개의 제품을 운영하던 팀에서 어느 날 다른 제품으로 DA1들이 모두 배치되었기에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건 오직 나뿐이라 모든 팀에 내게 데이터 분석을 요청하고 있었다. 누가 요청을 했느냐를 떠나서 당연히 나 밖에 없으니 데이터를 많이 보는 것은 당연했고, 그걸 제품을 총괄하고 이 모든 의사결정을 해온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데이터를 많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데이터를 많이 보려면 더 많은 실행이 필요했는데 제품 조직에서는 그런 빠른 움직임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아 제가요? 큰일이네요. 이정도가 제일 많이 보는 거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표가 나의 반응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글쎄요. DA들이 'A' 제품에 전부 배치된 이유가 제품 자체에 분석할 것들이 쏟아져서라고 생각했고, 정작 보다 보니 제품 뿐만 아니라 마케팅, 콘텐츠 모두 데이터 분석을 요청할 만큼 속도감이 있다고 느끼지 않아서 데이터를 보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각자 데이터를 보고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게 아닌 거잖아요."

"그런 데이터가 나오도록 일을 하는게 문제인 거예요. 데이터가 나올 수준의 제품으로 만들어야죠. MVP2가 아닌 MLP3를 만들어야 해요."

CTO가 내 의견에 반박 아닌 반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내게 말했다.

"MLP이냐 MVP냐의 경계선이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서 그건 논외로 하고, 저는 제품의 속도가 데이터를 자주 볼 만큼 iteration(반복 주기)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2주면 충분해야 하고, 그 이상의 시간이라면 스펙을 줄여야 해요. 'Lovable'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더 좋은 제품이 되려는 노력이어야 하는데, 2개월씩 걸리는 iteration은 스타트업에겐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 승빈님 스쿼드가 빠를까요?"

"네? 그게 지금 대화에서 맥락이 잘 이해가 안가는데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이 있으신가요?"

"승빈님은 이게 문제예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

내가 당황했던 이유에는 CTO도 PO 역할을 하겠다며 나보다 더 많은 인원을 스쿼드로 구성해 목적 조직을 구성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고, 제품 로드맵에서 딜레이가 자꾸 생겨서 우리 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더 빨리 끝내가며 그 스쿼드의 일들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만지며 나는 더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티를 냈다.

저런 대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속도를 말하면 충분히 좋은 제품이냐로 접근하고, 속도가 충분치 않다고 하면 비난하는 논리를 펼칠 것이라는 걸 대화의 흐름 상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패턴에 빠져 CPO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CTO와의 대화에서 자가당착에 빠지고 감정적으로 변해 이탈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다.

"승빈님 잠깐 걸으실까요?"

대표가 미팅 끝나고 나온 나를 붙잡고 산책을 제안했다.

Footnotes

  1. Data Analyst

  2. Minimum Valuable Product

  3. Minimum Lovable Produ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