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Bin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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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개인 보다 위대한 팀 #1

더 즐겁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직한 내 첫번째 IT 회사, 산업 전체가 성장하면서 내가 스스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AI에 대해 우연치 않은 기회에 깊게 실무를 접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지금도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직적 성숙함과 더 가파른 성장을 원했던 나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고 학업의 연장으로 간신히 버티던 나도 결국 졸업 1년 뒤 모든 기여가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조직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만큼 빠를 수 없고, 빨라지기 위해서는 조직은 개인 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스스로 몰아쳐서 얻은 성장은 건강을 완전히 무너지게 했고 원인 모를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운동과 자세 교정으로 간신히 삶의 질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빠른 성장과 건강을 맞바꾸는 경험을 하자 조직의 성장을 나의 성장 속도에 맞추고 견인하는 것에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조직의 성장과 변화를 견인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대표의 몫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결정이 수반되지 않는 한 나는 이단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성장을 가속하고 더 큰 시장에서 더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울로 이직을 준비했다.

서울은 내가 자랐던 곳이기에 익숙했다. 10년 만에 찾았지만 여전한 골목길과 상가들이 나를 반겼다. 중간에 거친 작은 회사에서의 짧은 기간은 내가 일을 잘하고 즐겁게 해낼 수 있는 문화에 대해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어느 때 보다 대표의 기질과 자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참여한 모든 인터뷰에서 나의 결심은 대표의 인터뷰에서 확신으로 바뀌곤 했다. 그렇게 만난 다음 회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이다. 오랜만에 조우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거리가 있어 전화로만 안부를 묻곤 했던 대표인데 나의 퇴사 소식을 듣고 바로 전화기에 그 분의 이름과 번호가 나타났다.

"지난 번에는 이직한다고 왜 제게 말을 안해주셨어요? 서운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이직하기 보다는 찾아보고 싶었어요. 불편하실 수 있다 생각했고요."

나의 대답에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렇게 전화를 주신건 뭔가 변화가 있으셔서인가요?"

"네 맞아요. 컬쳐 핏이 잘 맞지 않아서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됐어요. 함께 하고 싶다고 두번이나 연락주셨던게 기억나서 이번엔 제가 먼저 연락드려요. 아직 유효할까요?"

"물론이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공식적인 인터뷰 절차를 진행하고 합류했다. 20명 남짓의 작은 스타트업이고, 시리즈A 투자를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었다. 내 연봉은 전보다 살짝 낮췄고 대신 스톡옵션을 받았다. 팀원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느꼈고 이런 활력이 내게 힘이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업무적으로도 많이 함께 해본 멤버들도 보였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고, 성과를 만들고 싶어했다. AI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를 가지면서 제품에 대한 감각,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과 팀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나의 장점이라고 말하던 대표는 PO가 아닌 BD팀을 먼저 맡아달라고 했다. 이유는 심플했다. 제품은 어느정도 궤도에 있었고 비즈니스적인 성장에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내게 직무나 직함은 크게 중요치 않았기에 나와 팀이 성장할 수 있고 내가 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데이터 레이블링 산업은 코로나 시기를 맞으면서 특수를 누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되었고, AI를 만들겠다는 기업들은 재료(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우리를 찾았다. 정부에서 거대한 사업을 만들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침체를 극복하겠다고 했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업 공고를 기다렸다가 바로 뛰어들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입사하고 한달만에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우리 팀은 여러 개 받아왔고 밤새가며 함께 추진한 일들의 결과물을 보며 우리는 핑크빛 미래를 그렸다. 더 많은 인재를 데려올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받았고, 우리가 만드는 것들은 AI의 재료가 되고 있었다. 더 많은 고객과 데이터 레이블링을 해줄 사용자를 모으는 과정을 만드는 역할을 맡으면서 풀스택 개발자를 뽑고 나와 함께 하던 팀은 인플로우 스쿼드라는 이름으로 재편하며 나는 다시 PO로 돌아왔다. 이제 전문가가 된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기능 조직으로 탈바꿈했고, 나는 재구성된 제품팀의 PO로 두개의 스쿼드를 맡았다. 스쿼드 정비가 끝나자마자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고, 요건과 비즈니스 임팩트만 있으면 순식간에 제품을 만들어 내는 스쿼드가 되어 있었다. 2백명 남짓이던 사용자는 4만에 가까워졌고, 하는 것 마다 의도한대로 동작시키며 승승장구했다. 팀에 위닝 멘탈리티가 생길 때 무심하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비즈니스 팀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져오는 데에 한계를 느꼈고, 경기가 더 안좋아지자 AI를 만들던 기업들은 이쪽에 대한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쟁사는 투자를 받으며 더 공격적인 시장 장악을 시작했고, 미리 투자를 받으며 총알을 확보하는 것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우리는 Burn rate와 cash flow를 충분히 제대로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유의 상황에서 대표는 부랴부랴 투자처를 알아보며 IR을 다녔고, B2C 제품을 맡고 있던 나는 B2B로 시선을 다시 돌려 최소한의 인력으로도 우리 제품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SaaS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MVP는 정말 간단했고 한달만에 만들어진 제품은 고객들 중 써보고 싶다는 고객이 나타나며 다시 한번 분위기 반전을 꾀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현금은 더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고 생존과 수명 연장을 위해 우리는 권고 사직을 진행하게 됐다. 결국 팀은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다급해진 멤버들은 암울한 마음을 서로에게 던지며 더 온도 높은 충돌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대표와 의견 충돌을 서슴치 않았고 피벗에 집중하던 대표가 던진 미래에 결국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장의 반응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제품과 기회를 버린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시간이 흘러 대표와 통화하며 둘 중 어떤 선택을 했어도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다시 성장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많은 기대와 지지를 받았던 나도, 대표도 결국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팀의 구심점이 되지 못했고, 우리는 잘 헤쳐나가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 내가 대표의 결정을 따랐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큰 실패는 더 큰 절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했기 때문에 나는 팀을 떠나는 결정을 했다. 오히려 그게 더 구심점을 찾고 반전을 꾀하고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핑계와 함께...